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제프 부름헬러 (문단 편집) == 비행단장의 최후 == 6월 6일,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성공시킨 후에도 부름헬러는 격추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6월 8일, [[칸(프랑스)|칸]] 부근 상공에서 격추된 [[헤르베르트 후페르츠]](Herbert Huppertz : 1919~1944 / 68대 격추) 대위의 후임자로 JG 2 제 III 비행단장으로 임명되었다. 6월 12일에는 [[폭격기]]를 요격하다가 덤으로 [[P-47]]을 격추시키면서 독일 공군에서 80번째로 100대 격추를 달성했다. 물론 부름헬러의 전과는 그 대부분이 미영 공군기를 상대로 거둔 것이므로 [[독소전]]의 100대 격추와는 그 격을 달리하고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6월 16일, 부름헬러는 자신의 생애 마지막 전공이 될 [[P-51]]을 잡아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6월 22일에 Fw 190A-8에 타고 있던 부름헬러 대위는 알랑송(Alençon) 근처에서 미 육군 P-47과 [[캐나다]] 공군의 스핏파이어와 뒤얽혀 격렬한 선회전투를 벌이다가 윙맨으로 뒤를 따르던 쿠르트 프란츠케(Kurt Franzke) 상사의 탑승기와 충돌하고 말았고, 이 불의의 사고로 인해 어이없는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루프트바페 사령부는 그로부터 4달이 흐른 10월 24일에 탁월한 하늘의 투사이자 연합군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히고 있던 요제프 부름헬러 대위에게 소령 계급장과 함께 사실상의 최고훈장인 곡엽검 기사철십자훈장을 추서해주었다. 그의 이름을 따서 제프(Sepp)라는 콜사인으로 불리던 요제프 부름헬러 소령은 전쟁 동안 300회 이상을 출격하면서 102대의 적기를 격추시켰다. 동부 전선에서 떨군 9대를 제외하면 그 모두가 미영 공군기였으며, 그중에서 적어도 18대는 4발 중폭격기였다. [include(틀:2차 세계대전/전투기 에이스 87~113위)] [[분류:1917년 출생]][[분류:1944년 사망]][[분류:에이스 파일럿]][[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바이에른 주 출신 인물]][[분류:항공사고로 죽은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